신용회복경험담
채무 발생 전, 평범했던 내 인생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0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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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 발생 전, 평범했던 내 인생
저는 올해 46세, 지방 시청에서 근무 중인 평범한 공무원입니다. 20년 가까이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왔고, 아내와 고등학생인 두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누구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죠. 물론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매달 꾸준한 월급과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큰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년까지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자녀 교육비, 노후 준비 등을 생각하니 답답함이 몰려왔고, 이참에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창업의 실패, 걷잡을 수 없는 채무의 시작
지인의 소개로 시작하게 된 건 프랜차이즈 음식점이었습니다. 안정된 수익과 본사 지원이 있다는 말에, 그간 모은 예금과 은행 대출 5천만 원을 보태 가게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상권은 생각보다 유동 인구가 적었고, 인건비와 임대료는 빠르게 저를 압박했습니다.
매달 부족한 운영비는 카드로 메꿨고, 결국 카드론과 추가 대출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3년이 지나고 가게를 접었을 땐 이미 빚이 1억 1천만 원까지 불어나 있었습니다. 은행 2곳에서 6천만 원, 카드사 2곳에서 5천만 원 가까이 빌린 상태였고, 이자만 해도 한 달에 80만 원 이상 나갔죠.
공무원 월급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말도 못한 채, 카드대금 마감일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연명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으로서의 자존감이 무너졌습니다.

개인회생 결심, 늦었지만 다행이었던 용기
결정적인 계기는 아이 학원비였습니다. 아들이 “이번 달부터 학원 못 가냐”고 물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내에게 모든 상황을 털어놨습니다. 처음엔 놀라고 화도 냈지만, 이내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며 저를 다독여줬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함께 인터넷으로 '개인회생'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망설였습니다. ‘공무원이 개인회생이라니, 남들이 알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컸죠. 하지만 2주간의 고민 끝에 상담을 받기로 했습니다. 상담받던 날, 부끄럽고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지만, 상담사는 저의 상황을 꼼꼼히 듣고 가능한 절차를 설명해줬습니다. 처음으로 ‘이 문제에도 해결책이 있구나’라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개인회생 절차, 다시 걷기 시작한 삶의 길
신청서 제출 후 개시 결정까지는 약 두 달, 인가 결정까지는 총 6개월이 걸렸습니다. 변제계획은 월 52만 원씩 36개월간 성실하게 갚는 조건이었습니다. 변제금은 빠듯했지만, 이자에 쫓길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법원에 출석할 때는 긴장도 됐지만, 판사님의 차분한 질문과 정중한 절차를 겪으면서 ‘이건 처벌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제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생활비 조정이었죠. 외식은 거의 끊고, 아이들 용돈도 줄여야 했습니다. 대신 가족들과 함께 밥을 해 먹고, 주말에는 공원에서 산책하며 소소한 행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달라진 일상, 그리고 다시 품게 된 꿈
지금은 변제 1년 차입니다. 큰돈을 쓰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훨씬 가볍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족과의 관계가 더 끈끈해졌습니다. 자녀들도 “아빠 요즘 많이 웃는다”며 예전보다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간단합니다. 남은 변제기간도 성실히 잘 마치고, 다시는 무리한 대출이나 사업에 손대지 않는 것. 제게 가장 소중한 건 지금 곁에 있는 가족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저처럼 실패로 인해 채무에 시달리고 있다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망설이지 말고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세요. 저처럼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