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체면보다 중요한 건, 남은 삶을 편히 사는 용기였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6.2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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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15%)
정년퇴직한 지 벌써 4년째입니다. 퇴직 전까지는 한 중소기업에서 30년 넘게 근속하며 살아왔습니다. 자식 셋을 키우고, 노후 준비도 어설프게나마 해두었다고 생각했죠. 퇴직 후엔 경비원으로 일하며 소일했고, 아내와 둘이 조용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고급 승용차를 몰고 나오는 걸 보니 나도 괜히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퇴직했지만 나도 아직 한창이다’, ‘이 정도 차는 있어야 대접받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리스로 외제차를 계약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판단이었죠.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25%)
리스로 계약한 차량은 한 달에 85만 원, 보험료와 유류비를 합치면 유지비가 월 120만 원을 훌쩍 넘겼습니다. 경비원 일로 버는 돈이 많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빠듯했죠. 그래도 처음 6개월은 어떻게든 납부했는데, 어느 순간 카드로 리스비를 돌려막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빚이 빠르게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카드 한도를 넘기면 다른 카드로 돌려막고, 부족한 금액은 현금서비스를 받았습니다. 1년 반쯤 지나자 카드 연체가 시작됐고, 리스 회사에서도 차를 반납하라는 통보가 왔습니다. 결국 차량은 회수되었고, 위약금과 연체금이 더해져 총 채무는 5,500만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20%)
결정적으로 마음을 먹게 된 건 아내의 눈물 한 방울이었습니다. 리스 차가 회수된 날,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내는 제 표정을 읽고 있더군요. “왜 그랬어… 그냥 우리 형편에 맞게 살지”라는 말에, 그동안 제가 붙들고 있던 체면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일주일을 고민했습니다. ‘나이 먹고 무슨 개인회생이냐’는 자책이 계속됐지만, 결국엔 이대로 숨만 쉬고 사는 삶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자녀 중 한 명이 “아빠, 이제는 재정상담 받아보자”며 제 손을 잡아줬습니다. 그날, 처음 상담 예약을 했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25%)
상담을 받고, 제출 서류를 모아 법원에 접수하기까지 약 한 달이 걸렸습니다. 저의 수입과 나이, 상황을 반영해 변제계획을 세웠고, 3개월 뒤 법원의 인가가 떨어졌습니다. 월 36만 원씩 48개월(총 4년) 동안 상환하고, 나머지 채무는 탕감받는 조건이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스스로를 용서하는 일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때 멈추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매일같이 밀려왔지만, 법원에서 제 사정을 차근히 듣고 판단해준 덕분에 ‘그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인가 이후부터는 카드 독촉 전화도 끊기고, 매달 정해진 금액만 납부하면 된다는 안정감 덕분에 심리적으로 많이 편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아내와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제겐 큰 변화였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15%)
지금은 개인회생 변제를 시작한 지 1년 차입니다. 아직 빚이 남아 있지만, 매달 계획대로 갚아나가고 있고, 체면보다 실속이 중요하다는 걸 절실히 배웠습니다. 요즘은 중고 경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가족들과의 식사 시간이 가장 소중한 행복입니다.
앞으로는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퇴직했다고 끝이 아니고, 60대에도 다시 배워야 할 게 많더군요. 현재는 시니어 재정관리 강의도 듣고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 ‘이 나이에 무슨 개인회생이냐’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단 하나입니다. 용기 내세요. 나이와 상관없이, 인생은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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