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혼자서 다 버텨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6.24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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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땀 흘려 일하며 살아온 삶
제 고향은 충청도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결혼 후에도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고, 두 자녀를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봄이면 모내기, 여름엔 잡초 뽑기, 가을엔 수확… 계절 따라 움직이는 삶이었지만, 바빠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이들 둘 다 도시로 대학 보내고,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기려나 싶던 찰나, 인생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2. 전개: 이혼이 남긴 건 채무였습니다
남편과는 오랜 시간 갈등이 쌓여 결국 3년 반 전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이미 준비돼 있었지만, 현실적인 정산 과정은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재산 분할, 위자료, 정리되지 않은 공동 대출까지 모두 제 몫이 되면서 갑자기 7,800만 원의 빚이 생겼습니다.
은행 두 곳의 대출과 카드사 연체까지 이어졌고, 수입이라 해봤자 계절마다 조금씩 들어오는 농산물 판매금뿐이었습니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고, 그저 “엄마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며 혼자 버텼습니다. 처음엔 어떻게든 갚아보려 애썼지만, 이자는 계속 불어나고 원금은 줄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제 삶은 점점 조여왔습니다.

3. 위기: 딸의 말 한마디에 용기 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체면도, 돈도 아닌 외로움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오는 독촉 문자와 전화, 무너지는 자존감, 새벽마다 눈물로 시작하는 하루. 혼자 고립된 느낌이었죠.
그러다 어느 날, 도시에 사는 딸에게 무심코 “요즘 좀 어렵다”고 말했더니 딸이 먼저 알아챘습니다. 다 듣고 나서 조심스럽게 말하더군요.
“엄마, 개인회생이라는 제도 있어요. 도망 아니고, 새 출발하는 거예요.”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후 한 달 가까이 고민하다가 상담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두렵고 부끄러웠지만, 상담사분이 제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시고, 제 처지를 공감해주셨습니다. 상담실 문을 나서면서 ‘이제 정말 시작해보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4. 해결: 낯선 절차, 하지만 버틸 수 있었습니다
개인회생 절차는 복잡했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냈습니다. 농협, 국민은행 대출 내역, 카드 연체 기록, 소득 증빙까지 모두 준비하느라 힘들었지만,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약 4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법원에서는 저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주었고, 최종적으로 월 21만 원씩 3년간 갚는 변제계획안이 인가되었습니다. 그날 법원에서 나오며 처음으로 마음속이 조금 가벼워졌던 기억이 납니다.
변제 초반에는 솔직히 빠듯했습니다. 농한기엔 수입이 거의 없고, 갑작스런 병원비나 경조사가 생기면 납부를 미뤄야 하나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버텼습니다. 직접 키운 농산물을 시장에 나가 팔거나, 반찬을 만들어 파는 등 생활을 줄이고 알뜰하게 살아가며 한 달 한 달 채워갔습니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쫓기지 않는 삶’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매달 불안에 떨며 전화기 끄고 살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밤에 푹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낍니다.

5. 결말: 땅 위에서 다시 뿌리내리며
이제 개인회생 2년 차, 절반 이상을 잘 채워왔습니다. 여전히 수입은 적지만, 신용은 회복되고 있고, 빚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다시 믿게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자주 연락주고, 가끔씩 반찬이며 생필품을 챙겨줍니다. “엄마 요즘 얼굴 좋아졌네”라는 말 들을 때마다,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앞으로는 욕심내지 않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며 살 겁니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농사 지으며, 내 삶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저와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
“혼자라고 느껴질 때, 포기하지 마세요. 개인회생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회복은 용기 내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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