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46세 공무원의 고백, 무너지기 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야기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2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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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저는 올해 46세, 시청에서 일하고 있는 평범한 공무원입니다. 아내와 고등학생인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 하루하루 책임감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월급은 크지 않았지만 매달 들어오는 급여와 정해진 복지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대학 진학과 노후 준비까지 생각해야 할 시점이 되면서, 현실의 벽을 실감하긴 했지만 그래도 ‘공무원이니까’라는 생각에 큰 위기감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3년 전, 동료 한 명이 카페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며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혹했습니다. ‘조금만 도전하면 우리 가족 삶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긴 거죠. 마침 아내도 찬성했고, 은행 두 곳에서 대출을 받아 6천만 원을 마련해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다는 분식 프랜차이즈 매장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상권 분석이 부족했고, 인근에 유사 매장이 많았습니다. 한 달, 두 달… 매출은 고정비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낮았고, 결국은 카드 두 장을 돌려막기하며 운영을 버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3년 가까이 끌었고, 결국 폐업. 남은 건 1억 1천만 원이라는 빚과 무너진 자신감뿐이었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폐업 후 몇 달간은 거의 우울증에 가까운 나날이었습니다. 집에서도 말수가 줄고, 퇴근 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연체가 시작되었고, 카드사에서 독촉 전화가 쏟아졌습니다. 아이들 학원비는 줄어들었고, 아내는 밤마다 몰래 울고 있더군요.
그러던 중, 아내가 조심스럽게 “개인회생이라는 게 있다더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처음엔 ‘공무원이 그런 걸 해도 되나’, ‘주위 시선이 어떨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무려 두 달을 망설이다가 인터넷으로 정보를 모으고, 조심스럽게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그날, 상담실에서 제 재무 상태를 객관적으로 듣는 순간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이제야 뭔가 시작할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거든요.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상담 후 바로 서류를 준비해 법원에 신청했습니다. 준비부터 인가까지는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인가 후 제시된 변제 계획은 월 41만 원씩 3년간 갚는 조건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과연 내가 이걸 계속 지킬 수 있을까’ 두려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지출을 철저히 통제하며 생활 패턴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건 주변 사람들에게 숨겨야 한다는 부담이었고, 아이들에게 외식 한 번 제대로 시켜주지 못할 때 느끼는 죄책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빠는 다시 시작하는 중이야”라고 솔직히 털어놓은 날,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해준 응원이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법원 출석 당시 떨리는 마음으로 판사 앞에 섰지만, 제 상황을 성실히 설명하니 인가 결정이 나왔고, 그날 이후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지금은 변제 1년차입니다. 꼬박꼬박 월 41만 원씩 납부하고 있고, 처음엔 숨 가빴던 생활이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외식은 줄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고, 돈보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 앞에서 다시 당당해지고 싶다는 목표가 제게 큰 동기입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도 “내가 개인회생을 해도 될까” 망설이고 계시다면, 저처럼 늦기 전에 결정하시길 권합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시 살아가기 위한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저도 아직 끝은 아니지만, 매달 갚아나가는 돈만큼 제 삶도 차근차근 회복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당신도, 분명히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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