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8.01 17:56

62세 퇴직 경비원의 개인회생 경험담입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8.0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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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시작된 인생 2막, 개인회생으로 다시 선 삶의 이야기

한때는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30여 년 가까이 제조업 공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세 자녀를 키워냈고, 아내와도 큰 다툼 없이 지냈습니다. 퇴직 후에는 노후를 조용히 보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하지만 나이 예순을 넘기고 난 후, 인생이 송두리째 뒤집힐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혼이라는 큰 전환점, 그리고 불어나는 빚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아내와의 갈등이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협의 이혼을 하게 됐습니다. 재산 분할과 위자료, 자녀에게 남겨줄 최소한의 지원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손에 남은 건 고작 몇 백만 원뿐이었습니다. 모자란 금액은 은행과 카드사에서 빌려야 했고, 그렇게 생긴 채무는 어느덧 7,800만 원을 넘겼습니다.

공장 퇴직 이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경비원 일을 시작했지만, 매달 170만 원 남짓한 수입으로는 원리금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자만 갚다가 생활비가 부족해 다시 카드론을 쓰는 악순환이 반복됐죠. 빚은 줄기는커녕 더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절망감, 그리고 개인회생 결정

그렇게 1년 넘게 버티다가 어느 날, 급성 고혈압으로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병원비조차 카드로 결제하면서 “이제는 정말 끝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나는 그런 거 안 해도 버틸 수 있다’는 자존심이 있었고, 나이도 많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날 이후 한 달 정도 깊이 고민했고, 자녀들의 조언도 있었습니다. “아버지, 무너지기 전에 숨통부터 틔워야 해요.”

상담을 받으러 간 날, 무척 떨렸습니다. ‘이 나이에 이런 걸 상담하러 가다니…’ 부끄럽기도 하고, 괜히 눈물이 핑 돌더군요. 하지만 상담사는 제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며, 가능성에 대해 현실적으로 설명해줬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힘들었던 절차, 그러나 되돌아보면 가장 잘한 선택

서류 준비부터 법원 인가까지 약 5개월이 걸렸습니다. 처음엔 복잡한 서류와 제출 요건에 어려움을 느꼈지만, 하나씩 정리해가며 스스로도 정리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월 변제금은 31만 원으로 결정됐고, 총 3년간 갚는 조건이었습니다. 경비일을 하면서도 감당 가능한 금액이라 다행이었죠.

법원에 출석할 때는 긴장이 많이 됐습니다. 판사 앞에 서는 일이 처음이었으니까요. 다행히 절차는 차분했고, 제가 진심으로 갚고자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니 인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인가 이후부터는 이자 부담이 사라지고, 원금 일부만 갚으면 된다는 사실에 정말 안도했습니다.




 

삶은 여전히 조용하지만, 마음은 다시 밝아졌습니다

지금은 개인회생 2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매달 31만 원씩 꾸준히 납부하고 있고, 생활도 많이 안정됐습니다. 경비일도 익숙해졌고, 이제는 퇴근 후 간단히 텃밭 가꾸는 소소한 낙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매달 빚 독촉에 시달리지 않고 잔고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다는 게 큰 변화입니다.

앞으로 남은 1년도 잘 마무리해서, 새롭게 삶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꼭 무언가 대단한 걸 이루진 않아도, 안정된 일상만으로도 감사한 요즘입니다.




 

같은 처지의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

혹시 저처럼 인생 후반에 위기를 맞은 분이 계시다면,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제도적인 도움을 받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포기’가 아니라 ‘정리’의 시작입니다. 누군가는 말했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시작이다.” 저도 이제 그 말을 믿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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